부캉이 특수와 귀향
나는 상어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나를 상어라고 부르지 않는다.
‘부캉이’라고 부른다.
부산 북항에 나타난 상어라서 붙여준 이름이란다. 이름 하나 얻었더니 갑자기 유명해졌다. 사람들이 나를 보러 몰려오고, 사진을 찍고, 동영상을 올린다. 내가 나타난 뒤 북항에 사람들이 몰리면서 ‘북항 특수’라는 말까지 생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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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재우 목사 칼럼 가족행복학교 대표] |
나는 조금 어리둥절하다.
나는 장사를 하러 온 것도 아니고 관광객도 아니다.
그저 길을 잃었을 뿐이다.
하필이면 왜 북항까지 왔느냐고?
나도 모른다.
바다를 헤엄치다 어느 순간 물길이 달라졌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낯선 곳이었다.
‘어라? 여기가 아닌데.’
나는 몇 번이고 돌아보았다.
‘길을 잘못 들었슈.’
사람들은 내가 북항 구경을 나온 줄 아는 모양이다. 내가 물 위로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환호한다.
“부캉이다!”
아이들은 신기해하고, 어른들은 휴대전화를 꺼낸다.
나는 속으로 중얼거린다.
‘여러분, 미안하지만 나는 지금 관광 중이 아니거든요.’
나도 여러분을 구경하고 있다.
사람들은 참 재미있다.
길을 잃은 상어 한 마리를 놓고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그런데 며칠을 지내면서 나도 여러분에게 정이 들었다.
아이들의 얼굴도 보았고, 내 모습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어른들도 보았다. 내가 혹시 다칠까 염려하는 사람들의 마음도 느꼈다.
고맙다.
정말 고맙다.
그런데 한 가지 부탁이 있다.
이제 나를 보내주면 안 될까?
나는 이곳이 싫어서 그러는 것이 아니다.
북항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나도 안다.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멋진 항구, 불빛, 건물들, 그리고 나를 보러 나온 사람들의 웃음도 좋았다.
하지만 아무리 아름다운 곳도 내가 살아야 할 곳은 아니다.
나는 바다에서 태어났다.
내가 돌아다녀야 할 곳은 수로가 아니라 넓은 바다다.
내가 만나야 할 친구들은 사람 구경을 나온 사람들이 아니라 저 깊은 바다에서 함께 헤엄치는 내 친구들이다.
나는 그곳이 그립다.
문득 여러분의 추석 명절이 생각난다.
추석이면 사람들도 고향으로 간다면서?
차가 막혀도 가고, 기차표가 없어도 어떻게든 가고, 먼 길을 돌아서라도 부모와 형제와 친구를 만나러 간다지.
왜 그럴까?
고향이 특별해서일 것이다.
그곳에는 오래전부터 자신을 기다리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에게도 고향이 있다.
나에게는 바다가 고향이다.
나는 이제 돌아가고 싶다.
대보름달이 뜨는 날까지 기다리고 싶지 않다.
사람들이 나를 더 오래 보고 싶어 하는 마음도 이해한다.
하지만 나는 이미 충분히 보았다.
북항도 보았고, 사람들도 보았다.
이제는 저 넓은 바다가 보고 싶다.
나는 다른 상어들보다 어쩌면 운이 좋은 상어인지도 모른다.
길을 잃었지만 나를 발견한 사람들이 있었고, 나를 걱정해주는 사람들이 있었으며, 다시 바다로 돌려보내려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그러니 여러분께 부탁한다.
이제 나를 사랑하는 방법은 나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주는 것이다.
붙잡아 두는 것이 사랑인 줄 알았는데, 때로는 보내주는 것이 더 큰 사랑이라는 것을 나는 이번에 알았다.
사람도 그렇지 않은가?
자녀가 자라면 떠나보내야 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자기 길을 가려 하면 보내주어야 한다.
그리고 언젠가는 우리 자신도 떠나야 한다.
머물고 싶어도 머물 수 없는 시간이 온다.
그때 우리가 돌아가야 할 곳은 어디일까.
나는 안다.
나에게는 바다가 있다.
여러분에게는 어디가 있는가?
아마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태어난 고향일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부모가 기다리는 집일 것이다. 또 누군가에게는 오래 잊고 살았던 마음의 자리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가 평생 찾아 헤매는 것도 결국은 그곳인지 모른다.
자기가 누구였는지, 어디에서 왔는지, 어디로 돌아가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곳.
나는 이제 그곳으로 돌아가려 한다.
북항에서의 며칠은 내게 특별한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나를 보러 와준 아이들아, 고맙다.
내가 무사하기를 바랐던 어른들아, 고맙다.
그리고 나를 다시 바다로 보내려고 애쓰는 사람들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이제 나는 떠난다.
아쉽지만 안녕이다.
다시 만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혹시 언젠가 내가 다시 북항에 나타난다면 그때는 이렇게 말해주었으면 좋겠다.
“부캉아, 또 길을 잃었구나.”
그러면 나는 지느러미를 흔들며 대답하겠다.
“아니요. 이번에는 길을 찾아온 겁니다.”
그리고 다시 바다를 향해 헤엄칠 것이다.
파도가 기다리는 곳으로.
내 친구들이 기다리는 곳으로.
내가 태어난 곳으로.
내가 있어야 할 곳으로.
나는 이제야 알 것 같다.
길을 잃는다는 것은 반드시 불행한 일이 아니다.
길을 잃었기 때문에 비로소 내가 돌아가야 할 곳을 알게 될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나는 지금 떠나고 싶다.
여러분도 혹시 오래 머물러 있는 곳이 있는가?
이제는 떠나야 하는데 미련 때문에 머물러 있는 곳은 없는가?
사람들의 박수와 관심 때문에 내 길을 잊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렇다면 나를 한번 생각해주기 바란다.
나는 상어라서 바다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나이기 때문에 바다로 돌아가야 한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에게는 저마다 돌아가야 할 바다가 있다.
그러니 너무 늦기 전에 떠나자.
볼 만큼 보았다면,
머물 만큼 머물렀다면,
이제는 돌아가자.
나는 간다.
저 넓고 푸른 바다가 나를 부른다.
“부캉아, 이제 돌아오렴.”
나도 대답한다.
“그래. 이제 돌아갈게.”
그리고 조용히 지느러미를 저어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먼 바다로 사라진다.
아쉽지만,
안녕.
나의 짧았던 북항 여행이여.
그리고 다시 만날 나의 바다여.
귀향은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마침내 내가 누구인지 다시 만나는 일인지도 모른다.
세계투데이 / 한상옥 기자 san9191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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