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위해 삶 희생한 선교사들의 숭고함 [특집①]

홍정원 / 기사승인 : 2019-10-24 16:5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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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에 잠든 선교사들의 숭고한 헌신·업적
100여년 전 항일운동까지…

 


▲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 사진=박민규 기자

 


'조국 사태'로 빚어진 '국론 분열'의 대한민국. 현 상황에서 100여 년 전 일제강점기, 남의 나라 조선의 독립운동을 위해 나선 외국인 선교사들이 보여준 숭고한 희생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당시 항일을 위해 외국인 선교사까지 나서 우리 국민들과 뭉쳤고 일본에 맞서 싸웠다. 독립운동을 하다 순교한 외국인 선교사들에게 국론 분열의 현 정국 모습은 다소 부끄러운 일이다. 이들이 묻힌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 앞에 서니 더욱 고개가 숙여진다. 


 


세브란스병원 설립자 더글러스 B. 에비슨, 감리회 선교사이자 독립운동과 한글 발전에 공을 세운 호머 헐버트 박사, 대한매일신보 발행인 어니스트 베델, 장로회 선교사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 이화학당 설립자 메리 스크랜튼, 배재학당 설립자 헨리 아펜젤러…. 이들이 구한말 외국인 선교사다. 모국에서의 안정적인 삶을 버리고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당시 변방이던 'Corea'(코리아의 당시 표기)로 건너와 희생했다. 자신의 삶을 내던지는 것은 물론, 3대에 걸쳐 가족과 평생 선교한 이도 있었으며 어떤 이는 목숨 거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외국인 선교사들의 숭고한 헌신과 업적에 비해 이들을 잘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 사진=박민규 기자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 있는 양화진(楊花津)의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은 외국인 선교사들의 시신을 안장해 그들의 뜻과 업적을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 기독교 선교와 근대화에 기여하고 순교한 외국인 선교사들의 헌신을 기리는 것. 이곳에는 구한말 조선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왔다가 생명을 다한 선교사들과 그들의 가족 140여 명이 안장돼 있다. 그들의 헌신을 알리기 위해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 기획특집기사를 1~3회로 준비했다. 



■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 목적, 이름을 얻기까지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이하 양화진 묘원 혹은 묘원)은 조선에서 사망한 외국인들을 안장하기 위한 것으로 설립됐다. 양화진 묘원은 '외국인 선교사의 분묘를 보전하고 관리해 우리나라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한 고인들의 사랑과 희생정신을 기림을 목적'으로 조성됐다. 


 


묘원 이름은 세월에 따라 일제강점기에는 '경성구미인묘지'로 불리다 해방 후 '서울 외국인 묘지'로 바뀌었다. 지난 1986년 선교기념관 건립 때에는 '서울 외국인 묘지공원'으로 변경됐다. 이후 2005년 7월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사업회가 선교기념관을 예배당으로 사용하는 한국기독교선교100주년기념교회를 설립하고 이 교회에 묘역과 선교기념관 관리 운영에 관한 책임과 권한을 위임하면서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Yanghwajin Foreign Missionary Cemetery)으로 개칭됐다.


 



▲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 사진=박민규 기자
■ 고종 시의 '헤론' 안장을 시초로… 조성의 시작과 완성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이 마련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1890년 7월 26일 미국 북장로회 의료선교사이자 고종의 시의(侍醫), 광혜원 2대 원장이었던 존 헤론(,J.W, 1856∼1890)이 환자를 돌보다 급환(이질)으로 소천하자 묘지 장소 선정에 문제가 생겼다. 당시 도성 내 시신을 매장하는 일은 금지돼 있었기 때문이다. 헤론의 가족들은 조정에 서울 가까이에 묘지 장소를 제공해 줄 것을 요청했지만 지정해준 곳은 한강 건너편 야산 기슭 모래밭. 묘지로 쓸 수 없는 땅이었다. 시신을 밀봉해 헤론이 살던 집 뒤뜰에 매장하려 했으나 선교사를 보조하는 서생들이 반대했다.


 


이때 미국공사관과 조정의 신임을 받던 알렌과 언더우드 등 선교사들은 외교 경로를 통해 미국공사를 비롯한 러시아·영국·프랑스·독일 등 5개국 공사의 공동 명의로 양화진을 외국인 공동묘지로 허락해 줄 것을 청원했다. 이로써 양화진 언덕을 묘지로 사용하도록 허가받은 것. 헤론을 처음 안장하게 된 것을 시작으로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이 조성됐다.


 


▲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 사진=박민규 기자


묘원은 1890년 조선 정부에 의해 처음 외국인 묘지로 지정됐다. 하지만 뚜렷한 관리 없이 방치돼있었다. 1985년에서야 법적 절차를 거쳐 한경직 목사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재단에 귀속돼 묘원이 관리되기 시작됐다. 100주년기념재단은 이곳에 선교기념관을 세우고 묘역을 정비해 한국 기독교 성지로 만들어갔다. 그러나 이곳을 사사로운 목적으로 이용하려는 단체와 개인에 의해 지난 20여 년간 훼손됐다. 이에 100주년기념재단은 묘원을 제대로 관리하고 보존하기 위해 한국기독교선교100주년기념교회를 설립했다. 


 


묘원에는 외국인 선교사와 그들의 가족 묘지를 비롯해 100주년기념교회, 방문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전시실도 마련돼 있는데 특히 양화진홀(전시실)은 소천한 선교사들의 후예들이 유품을 기증해 보관하고 있다. 양화진홀은 이곳 묘원 조성의 목적인 '선교사들의 신앙과 삶을 기리고 조명'하는 기억의 터다. 이 전시실에는 선교사들을 이 땅에 오게 한 섭리와 그들의 수고, 헌신을 한눈에 엿볼 수 있는 자료들을 소개한다. 


 


 


글=홍정원 기자 사진=박민규 기자  자료도움=한국기독교선교100주년기념재단, <이땅에 떨어진 밀알들 양화진 선교사>,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 특집②] 고국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이들' 기사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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