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집보다 칼, 중요한 것은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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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포드 처치 원유경 목사 |
포드 처치가 지향하는 목회의 핵심 비전과 교회 이름의 의미를 말씀 해주세요.
POD Church는 Parade of David의 알파벳 초성으로 구성된 이름으로 사무엘하 6장 말씀에 다윗이 유다 변방에 방치 되었던 하나님의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는 행렬을 상징합니다.
여섯 걸음마다 한번씩 살찐 소를 잡아 하나님 앞에 예배했던 전심의 예배로, 이 시대 인생의 중심, 사회, 정치, 문화의 중심에 하나님의 통치를 선언하고 회복하는 예배를 추구합니다.
하나님의 하나님에 의한 하나님을 위한 예배, 인생, 교회가 되는 것. 무엇보다 이스라엘의 중심, 예루살렘 시온산에 그 법궤를 안치함으로 하나님의 왕되심과 통치를 선포하고, 24시간 365일 하나님을 예배했던 다윗의 장막을 오늘 우리의 시대 가운데 다시 성취하는 것이 포드 처치의 비전입니다.
이를 위해 그치지 않는 갈망으로 하나님의 영광만을 추구하는 매주의 예배, 성령의 기름부으심이 실체와 동력이 되는 사역, 사회의 각층에 탁월한 성경적 리더를 세우는 양육, 복음의 가치를 삶의 구체적 변화로 만들어내는 창의적 문화를 실현하고자 합니다.
포드 처치에는 많은 대학생과 청년들이 함께 하고 있습니다. 그들을 섬기면서 특별히 느끼는 도전은 무엇인가요? 그리고 청년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말씀’과 ‘문화적 공감’ 사이에서 목회자로서 어떻게 균형을 잡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청년의 시기는 인생의 주기에 있어서 가장 역동적이며 정체성 형성의 전환점이 되는 중요한 시기입니다. 자기 존재와 삶의 목적에 대한 의미를 탐색하고 고유한 사명과 비전을 찾아가는 과도기적 시기이기 때문에 내적인 갈등과 불안이 큰 시기이죠.
또한 배움과 도전, 성장에 대한 욕구가 강렬한 시기이기도 합니다. 더욱이 인생의 다채로운 미래 가능성과 불확실성 자체가 큰 압력이 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외부적 요구, 내부적 욕구 모두가 본격적으로 분출하는 시기인 만큼 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위해 사는가 하는 이 질문이 ‘하나님 앞에 선 존재’로서 정립되지 않으면 이 혼란 가운데 표류하기 쉬운 시기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청년 사역의 본질적인 과제는 메시지가 삶의 위로와 동기 부여에 머물러 선 안된다는 것입니다.
이 시기 말씀과 현실의 간극을 견딜 수 있는 자기 정체성과 인생의 방향성을 예배와 말씀을 통해 반드시 정립해야 하는 것이죠.
나는 누구이며,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 IDENTITY와 DESTINY. 하나님 앞에서 나의 정체성과 그분의 운명적 부르심. 이 둘 안에서 자신의 시작점과 완성점이 연결되고 하나의 관통선으로 꿰어져야 합니다. 이 두가지가 연결 되어야 흔들림 없는 인생의 방향성이 설정되고 분명한 믿음의 이정표가 세워지는 것이죠. 그런데 이 발견과 확인은 오직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직면할 때 주어집니다.
하나님의 임재와 말씀 앞에서만 경험 되어지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임재 앞에 선 이 영적 경험을 열어주는 것이 결국 청년 목회의 핵심입니다. 그리고 이 영적 경험을 열어주기 위해서는 ‘말씀’과 ‘문화적 공감’사이에서 저는 오히려 균형을 추구하라고 하기보다 본질을 추구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어쩌면 이것은 ‘말씀’으로 집중된 철저한 불균형에 가깝습니다. 이때 문화적인 공감은 목표가 아니라 결과에 가깝죠.
저는 문화를 분석하고 추구하면서 공감을 얻기 이전에 하나님의 마음과 뜻에 끝까지 정직하게 몰입할 때 오히려 이 세대가 그 진정성에 공명한다고 믿습니다. 세례 요한이 그 시대의 문화와 전혀 맞지 않는 방식으로 말씀을 선언했지만 오히려 한 시대를 여는 선구적 메신저가 됐던 것처럼요.
포드 처치가 문화적 균형 감각을 갖추었다고 보이는 어떤 지점들조차 사실은 ‘전략’이었다기 보다는 예배에 대한 집요한 고민에서부터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어쩌면 이 고민이 너무 진지한 나머지 그것이 독특한 문화로 자리 잡게 된 것이죠.
본질이 빈약한 채로 방법론에 대해 고민하는 것은 무의미한 것처럼 어떤 시대, 어떤 세대를 향해서도 ‘전략’보다 중요한 것은 ‘본질’입니다.
무딘 검을 가지고 어떤 칼집에 넣을 것인지를 고민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듯이 먼저 칼을 갈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있고 활력있는 좌우의 날 선 검과 같을 때 인생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저는 말씀 그 자체가 능력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 본연의 하나님의 뜻과 영광을 반영한 채로 선포될 수 있다면 사실상 문화의 도움은 무색하다고도 생각합니다. 물론 문화 영역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말씀이 가진 능력 자체의 충분함을 말하는 것이죠. 다만 이 본질의 강화가 이루어졌다면 이 본질을 어떻게 한 세대 중심에 자리 잡게 할 것인지 그 랜딩에 대한 고민은 필요합니다.
말씀이 청년 세대의 삶에 어떻게 깊이 관여하고 적용될 수 있을지, 말씀과 문화, 복음과 청년의 접촉점에 대한 고민 말이죠. 중요한 것은 이 고민은 절대 따로 따로가 될 수 없습니다.
둘에 대한 연결은 둘 다가 존재할 때만 가능합니다. 말씀도 살아있고 현실도 살아있으려면 현실에서 내가 말씀으로 살아보는 치열한 경험을 통해 자신만의 답을 찾아야 하는 것이죠. 다윗이 사울의 갑옷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무기를 들었듯이. 하지만 이 대담하고 자신 있는 선택은 분명 그가 이 물매질을 수없이 해본 경험으로부터 나온 것이죠.
진짜 날카로운 현실감각, 문화 감각은 말씀으로 현실을 버텨본 경험에서 나옵니다. 그리고 이때 이 진정성에 청년들은 공명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시대에 대한 감각보다 하나님에 대한 감각을 선명하게 세울 때 이 세대가 함께 반응할 수 있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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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드 처치의 예배드리는 모습 |
MZ세대가 교회를 떠나거나 신앙에 대한 회의감을 갖는 현상에 대해 목사님은 어떤 대안을 고민하고 계십니까? 그리고 목사님이 보시기에, 오늘날 청년들이 교회 안에서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먼저 이 질문 앞에서 두 가지 문제를 가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교회를 떠난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을 떠난 것인가?
만약 그들이 하나님을 떠난 것이라면 그들이 떠났다기보다 한 번도 온 적이 없었다는 것이 맞을지 모르겠습니다. 진짜 그들의 마음, 영혼, 인생이 하나님의 임재 앞에 머물렀다면 그들은 쉽게 하나님을 등질 수 없습니다.
인간이 하나님 앞에 선 진짜 임재의 경험은 결코 다른 어떤 것으로 대체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따라서 교회가 추구해야 하는 진정한 경험은 다름 아니라 이 임재에 대한 경험입니다. 하지만 이 경험을 추구하는 일은 사실상 쉽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를 결코 통제할 수도 기획할 수도 없기 때문이죠.
그야말로 계속된 추구, 끈질긴 추구만이 답입니다. 이 추구를 소홀히 하는 순간, 하나님에 대한 진정성, 삶을 관통하는 본질의 부재를 느낄 때 청년들은 신앙과 거리를 둡니다.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는 교회 안의 신앙적 경험이 자신의 존재적 문제와 현실 문제를 충분히 감당해주지 못한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신앙생활’의 형식은 세대마다 달라지지만 ‘신앙’은 달라질 수 없는 것이기에 교회가 이 본질을 결코 간과하지 않고 성도들에게 제시할 메시지를 상실하지 않는다면 근본적으로 청년들이 교회로부터 쉽게 뒤돌아설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만약 그들이 신앙을 등졌다기보다 단지 교회라는 공동체를 떠난 것이라면 이것은 방법론을 고민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MZ세대가 교회를 떠나거나 거부하는 이유 중 하나가 교회 문화가 뒤떨어져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거나 개인주의적 성향으로 공동체 생활을 회피하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굳이 신앙생활을 특정한 시공간 안에 묶여서 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공동체 안에 소속되지 않더라도 그들은 하나님과 자신의 관계에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따라서 그들이 이러한 경향성을 넘어, 개인의 정서적 장벽도 넘어 교회로까지 이끄는 데에는 더 확실한 경험과 확고한 동기 부여가 필요합니다. 교회에 왔을 때만이 경험할 수 있는 체험적 신앙이 있어야 합니다.
청년들이 교회를 향해 목말라 하는 것은 세련된 문화와 잘 짜여진 프로그램이 아닙니다. 반복해서 말씀드리지만 그저 하나님 앞에 선 경험이죠.
인간의 그 어떤 경험이 창조주 앞에 선 이 경험을 넘어설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이 경험을 교회가 아닌 어느 곳에서 경험할 수 있겠습니까. 이 세대를 하나님 앞에 다시 데려오기 위해서는 교회에 그분의 존재가 부재하면 안 됩니다. 주님이 교회에 임재하시기 위해 우리가 그 그릇이 되고 터가 될 때 이 영적 갈망을 가진 사람들은 교회로 오게 되어 있습니다.
앞으로 포드 처치를 통해 이루고 싶은 사역의 그림이 있다면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저는 오랫동안 전문적 문화 예술인들이 예배를 위해 헌신하는 것을 꿈꿔왔습니다. 포드 처치는 예배에 대한 특별한 부르심이 있는 교회입니다. 최고의 창의성과 예술성이 예배라는 이 결정적 시간을 위해 집중되고 집약되기 위해 교회가 이들에게 그 장을 열어줄 수 있는 인프라를 제공하고 싶습니다. 그들이 자신의 예술성과 탁월성을 세상이 아닌 예배를 위해 쏟아부을 수 있도록, 그래서 그야말로 예배 예술의 장인이 될 수 있도록 말이죠.
재미교포 크리스찬들에게 신앙의 격려메시지 부탁드립니다.
저희 교회에도 글로벌 포드 성도님들이 계십니다. 전 세계 각지에 흩어져 포드 처치의 정체성과 비전을 공유하며 함께 매 주일 예배하는 성도님들이시죠.
매주 현장에서 드려지는 이 예배를 사모한 나머지 수련회 일정에 맞춰 한국에 오시기도 하십니다. 고국 땅을 밟자마자 하나님 임재에 대한 이 갈망과 열정으로 이 예배 현장으로 달려오시는 그분들의 발걸음을 생각하면 언제나 가슴이 뛰고 벅찹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걸음인지요.
저는 그분들을 생각할 때마다 그분들이 그 값을 치르고 온 이 예배의 현장이 단 한 번의 예배로서 충분한 가치가 있을 수 있도록 전부를 걸고 예배합니다. 매주 한 번의 예배가 단 한번의 유일한 예배인 것처럼 예배하는 일이 매주 저의 숙명이죠.
크리스천의 삶과 교포로서의 삶에는 묘한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방인으로서의 삶의 정체성 말이죠. 이 이방인으로서의 정체성이 여러분의 삶의 처절한 고독감과 외로움, 한계와 설움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때마다 이 땅에서 성도로서 살아가는 일에 대한 깊은 묵상과 영적 성장이 열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쩌면 어디까지나 낯설고 완전히 정착할 수도 없으며 결국 온전한 내가 되려면 또한 이방인임을 포기할 수 없는 이 정체성이 이 땅에서의 성도로서의 삶, 순례자의 삶, 본향을 그리워하는 우리의 정체성과 꼭 닿아 있으니까요. 결코 쉽지 않을 이 삶 가운데 주님의 깊은 위로와 임재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포드처치 웹사이트 www.pod21.org
대담 노승빈 (세계투데이 주필, 백석대 교수)·정리 임지희 (포드 처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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