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동국성신 대표이사 강국창 장로

노승빈 기자 노승빈 기자 / 기사승인 : 2026-08-15 11: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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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도에서 재기로, 성공에서 사명으로”

▲ 동국성신 강국창 대표이사


동국성신의 이름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부도 후 다시 사업을 시작할 때 동춘이라는 친구가 공장을 얻을 수 있도록 돈을 마련해 줬습니다. 너무 고마워서 회사 이름을 지을 때 그 친구 이름의 ‘동’자와 제 이름의 ‘국’자를 따서 ‘동국전자’라고 지었습니다.
그렇게 다시 시작해 대우전자와 일을 하면서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았습니다. 이후 LG전자와 삼성전자의 협력업체가 되기 위해 각각 법인을 설립했습니다. ‘하나님을 열심히 믿는 기술회사가 되겠습니다’라는 의미로 ‘성신하이텍’을 세워 삼성전자와 협력했고, ‘가나안전자’를 세워 LG전자와 협력했습니다. 이후 대우전자가 어려워지면서 동국전자와 성신하이텍을 합쳤고, 그렇게 ‘동국성신’이 되었습니다. 

모든 것을 잃고 절망하던 시기에 친구의 권유로 교회에 출석하고 인격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셨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사업이 잘될 때는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부도가 나고 도망자 신세가 되니 남은 친구는 몇 명 없었습니다. 사람이 실패하면 용기를 잃고, 사람 만나기가 싫어지고, 숨게 됩니다. 그때 한 친구가 피하기 좋은 곳이 기도원이라고 해서 순복음교회에 등록하고 오산리기도원으로 따라갔습니다. 
사람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환경에 처하니 인간의 무기력을 느끼면서 ‘정말 하나님이 계시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금식하며 다섯 번 정도 예배를 드렸던 것 같아요. 배가 고프니까 누워 있다가 찬송 소리가 들리면 일어나게 되고, 이것을 반복하다 보니 하나님 말씀이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인정하고 도움을 구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어려움 가운데 신앙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탄광촌에서의 어린 시절과 척박한 환경은 훗날 기업가로서 자립하는 데 어떤 밑거름이 되었습니까? 오늘날 실패를 두려워하는 청년들에게 ‘흙수저 연금술사’로서 꼭 전하고 싶은 한마디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저는 태백 탄광촌에서 태어났고, 9남매 중 셋째입니다. 아버지도 탄광에 계셨고 형님도 탄광에 계셨습니다. 저 역시 선택의 여지 없이 태백공업고등학교 광산과를 나와 탄광에서 일하게 될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강원산업(삼표연탄)의 정인욱 회장님께서 태백공업고등학교 출신 학생이 공과대학에 진학하면 4년 전액 장학금을 주겠다는 제안을 하셨어요.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내가 탄광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대학에 진학하는 것뿐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문구점에서 책을 사서 독학으로 입시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9남매가 사는 집은 늘 시끄러웠고 공부할 장소가 없었습니다. 우리 집은 일본 사람들이 탄광 할 때 지은 사택이어서 벽장이 있었어요. 그 벽장에 작은 전구를 달고 바둑판을 책상으로 공부했습니다. 
그 당시 가장 힘들었던 건 친구들과 놀고 싶은 마음을 참는 것이었습니다. 명절이나 연말연시가 되면 남녀가 모여 놀았는데, 저도 함께 놀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몇 번 모임에 나가지 않으니 나중에는 친구들이 저를 부르지도 않았고, 왕따 비슷하게 된 것이 참 서러웠습니다.

저의 경험을 돌이켜 보면, 신앙생활은 체험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려움이나 실패를 겪었을 때, 그 환경에서 벗어나기 위한 목표를 세우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의 힘만으로는 안 되기 때문에 힘을 주시는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우리의 생각과 하나님의 뜻은 다를 수 있기 때문에 내가 세운 목표대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목표를 세우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회가 주어집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노력해야 하고, 젊을 때 흘린 땀은 성공의 밑거름이라는 사실을 꼭 전하고 싶습니다. 

장로님의 삶에 어머니의 강인함과 아버지의 성실함이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두 분을 소개해주세요.
어머니는 굉장히 엄하고 강인하셨습니다. 어릴 때 ‘우리 엄마는 팥쥐 엄마가 아닌가’ 생각할 때가 많았습니다. 9남매를 키워야 하셨으니 아버지의 봉급만으로 생활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토끼와 돼지를 기르고, 밭에 무와 배추를 심고, 구멍가게도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우리가 노는 모습을 그냥 지나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밭일을 하든, 토끼나 돼지 먹이를 주든, 갓난아기를 돌보든 일을 해야 했습니다. 
 

당시에는 어머니가 너무 무서웠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하지 않고는 9남매를 키우기 어려우셨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아버지는 자상하고 합리적인 분이셨습니다. 잘못하면 제가 맞을 회초리를 직접 만들어 오게 하셨고, 맞으면서 숫자도 제가 직접 세게 하셨습니다. 친구와 싸워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거나 잘못을 하면, 반성하는 것만으로 끝내지 않고 그에 대한 책임을 반드시 지도록 하셨습니다. 

30대 중반에 냉장고 핵심 부품 국산화로 큰 성공을 거두셨지만, 이후 방만한  경영과 과욕으로 뼈아픈 부도를 겪으셨습니다. 인생의 가장 밑바닥에서 깨달은 ‘성공하는 경영자의 조건’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뜻을 잘 살피며 묵상하는 가운데 자신에게 주신 달란트를 발견하고, 그것을 잘 살릴 수 있는 방향으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사명은 많은 사람에게 일자리를 만들어 주는 일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기업가는 자기 혼자 먹고 살기 위해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명에 따라 국가에 대한 책임을 가지고 많은 사람에게 일자리를 만들어 주며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치열한 비즈니스 세계에서 세상의 가치관과 타협하지 않고, 그리스도인 기업인으로서 지켜온 원칙이나 철학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ROTC 장교로 임관할 때 교관에게 받은 교육 가운데 좌우명으로 삼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명예는 상사에게, 공은 부하에게, 책임은 나에게’라는 군인정신입니다. 저는 직장생활을 약 10년 했는데 늘 그 정신으로 일했습니다. 그랬더니 다른 사람보다 빨리 진급해 최연소 계장, 최연소 부장이 됐습니다.


또 하나는 ‘변해야 산다’는 정신입니다. ‘어제와 똑같은 오늘을 살면서 더 좋은 내일을 기대할 수는 없다’는 말을 마음에 새기고 있습니다. 공장을 돌 때도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더 좋은 방법이 있는지 찾습니다. 중소기업이 40년 이상 존속한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늘 그런 시각으로 현장을 바라보며 끊임없이 변화를 시도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멀티플레이어 정신이 필요합니다. 자기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옆 사람의 일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누군가 휴가를 가면 다른 사람이 그 일을 대신할 수 있어야 하고, 업무에 틈이 생기면 공동체 의식을 가직고 서로 도와야 합니다. 

신앙생활이 기업을 경영하고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나침반 역할을 해왔습니까?
사업이 부도나면서 잘나갈 때 함께했던 친구들이 어려울 때도 함께해 줄 것이라는 믿음은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나의 생각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잘 살피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바라시는 일이 무엇일까?’를 많이 묻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회사를 경영해 왔고, 40년 넘게 구조조정 없이 회사를 이어올 수 있었던 것도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국내 가전 부품 산업의 불모지나 다름없던 시절에 ‘품질 향상과 원가 절감’이라는 무기로 40년 이상 글로벌 강소기업을 일구셨습니다. 특히 회사에 ‘소파가 없다’고 들었는데, 여전히 현장을 고집하시는 회장님만의 혁신과 속도의 경영 철학을 듣고 싶습니다.
우리 집 가훈은 ‘모든 일에 정성을, 주어진 일에 최선을, 목적 있는 행동을, 후회 없는 생활을’입니다. 사훈은 ‘신속·정확·협동’입니다. 대기업은 늦더라도 처음부터 정확해야 하지만, 중소기업은 우선 빨리 시작해 보고 잘못된 점이 있으면 신속하게 고쳐 나가야 합니다. 늦게 움직이면 기회 자체를 놓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회사에는 소파가 없습니다. 소파는 신속하게 움직이는 데 방해가 되기 때문에 국내외 모든 사업장에 소파를 두지 않도록 했습니다. 제 방의 문도 특별한 일이 아니면 늘 열어 둡니다. 저는 지금도 개발자의 한 사람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국내외 회사 제품은 대부분 제 손을 거쳐 개발되었습니다. 제가 현장을 도는 것은 다녀간 자리에 하나라도 개선을 하고, 작업자들이 조금이라도 더 편하게 일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목적 있는 행동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어떤 일을 할 때 남이 하니까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의 목적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저는 영업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어서 물건을 잘 팔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팔러 가는 물건이 아니라 고객이 사러 오는 물건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제품은 대우전자, 삼성전자, LG전자가 필요해서 찾아오게 만들자는 것이었습니다. 

앞으로 남은 생애 동안 반드시 이루고 싶으신 비전이나 기도제목은 무엇인가요?
남은 생애에는 공의롭고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만드는 데 일조하고 싶습니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드는 운동도 하고 싶습니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발전하는 데 제조업이 큰 역할을 했고, 지금도 고용 유발 효과가 가장 큰 산업이 제조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금 국내 제조업은 중국을 비롯한 경쟁국과의 가격 경쟁에서 상당히 어려운 상황입니다. 제품 가격을 결정하는 것은 크게 재료비, 인건비, 경비입니다. 우리나라는 원재료를 대부분 수입해야 하고 인건비와 경비 부담도 높습니다. 그러다 보니 원가 경쟁력이 떨어지고 제품 가격도 높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품질이 월등하게 우수하다면 비싸도 살 수 있지만, 지금은 경쟁국의 품질도 많이 향상되었습니다. 가격을 맞추지 못하면 결국 생산할 필요가 없어지고 중소기업이 손을 놓게 됩니다. 그러면 그곳에서 일하던 사람들의 일자리도 없어집니다. 남동공단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공업단지인데 현재 가동률이 상당히 낮아져 있습니다. 제조업의 경쟁력을 살리고 기업인들의 사기를 높여야 국가도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주님이 부르실 때까지 베풀고 나누며 더불어 사는 삶을 살다가 가고 싶습니다. 

좋아하시는 성경구절과 재미교포 크리스천들에게 신앙의 격려 메시지 부탁드립니다.
제가 좋아하는 말씀은 마태복음 5장 13절부터 16절 ‘빛과 소금’의 말씀입니다. 크리스천은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기 위해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하나는 야고보서 2장 17절부터 26절 ‘행함이 없는 믿음’에 관한 말씀입니다. 
우리의 행동에는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미국에서 공부하는 것도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기 위한 목적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학문이 깊어도 그것을 머릿속 지식으로만 두고 시험을 위해서만 공부해서는 안 됩니다.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깨닫고 행동으로 옮겨야 합니다. 성경을 열 번, 백 번 읽어도 행함이 없다면 왜 읽는지를 스스로 물어야 합니다. 

동국성신 웹사이트  www.dksungshin.com

대담 노승빈 (세계투데이 주필, 백석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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